[번역] 더블오 세컨드 시즌 노벨라이즈 4권 아뉴 리턴, 발췌 번역 Part 5

Banishing from Heaven | 2010/01/17 01:07

반은 30만 히트 기념이고 반은 리린 님의 협박(...)에 의한 발췌 번역 5탄이 돌아왔습니다 디리리링.
일명 '라일이 이 색햐 수치플 좀 고만 찍어라 보는 내가 다 쪽팔린다' 에피소드. 21화 초반에 해당합니다. 자 우리 모두 함께 나란히 쳐웃읍시다. 이예이.


4권 291page~296page

「사람을 구하는 일이지? 그렇다면 협력할게」
지독하게도 솔직한 표현으로 동의를 표한 사지는, 빨간하로와 헬멧을 양팔에 끼고 제 3격납고로 통하는 옆통로로 꺾어져 들어갔다.
사지의 뒷모습을 잠시간 지켜본 세츠나는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앞에, 마치 세츠나의 갈길을 가로막고 나선 것처럼, 한 사내가 나타났다.
세츠나의 얼굴에 희미하게 놀란 빛이 떠오르고, 바닥에 자석을 내장한 부츠의 바닥을 붙이고 이동을 멈추었다.
「……라일……」
이름을 불린 남자도, 바닥에 부츠를 붙이고 멈추어섰다.
문제의 사건 이후, 첫 대면이었다.
라일의 얼굴에서 심각한 정신적 상흔의 음영을, 세츠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눈빛은 생생히 살았고, 외견의 변화라고 해봤자, 뺨이 다소간 홀쭉해지고, 피부가 살짝 거칠어진 정도일까.
물론 그가 얼마나 전전반측의 괴로운 시간을 보낸 끝에 지금에 이르렀는지, 세츠나는 어렵잖게 상상할 수 있었다.
한동안 침묵을 끼고 시선을 교환한 후, 제복을 차려입은 라일이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시선을 외면했다.
「……요전에는 미안했어.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마이스터 실격이야……」
「라일, 나는──」
「싸울 거야」
라일이 세츠나의 말을 잘랐다.
이어서 그는, 몸을 완전히 90도 틀어, 마치 통로의 벽에 선언하는마냥, 마음 속의 혼잣말을 세츠나에게 들려주는마냥 낮게 중얼거렸다.
「나는, 싸우겠어」
세츠나는 얼마간 라일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동료 건담 마이스터의 눈속에서 먹구름마저도 가리지 못할 강렬한 빛을 발견하고, 세츠나는 완벽에 가까우리만큼 정확하게 그의 각오를 깨달아,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여 응답했다.
「……알았다」
그리고, 다시금 바닥을 차고 제 1격납고로 향했다.
세츠나가 라일의 앞을 가로질렀다.

살짝 내리깐 시야를, 세츠나의 검은 머리칼이 통과한다.
라일의 눈은 세츠나를 좇지 않았지만, 의식은 계속 골똘히 응시하고 있었다.
한 번, 크고 깊게 숨을 들이쉬고, 눈을 감았다. 머릿속을 냉정하게 정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눈을 감기가 무섭게, 요 며칠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떠오르는 아뉴의 마지막 미소가, 또다시 되살아나고 말았다.
……결코 잊지 못한다.
잊지 못하는 이상, 타협하고 매듭지을 수밖에 없었다.
라일에게, 그녀의 뒤를 따른다는 사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삶의 보람을 가르쳐준 그녀를 배신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일 뿐더러, 무엇보다 무의식 중에 굳게 움켜쥔 주먹이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세츠나에게 선언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나는 싸우겠어.
(아아, 그렇지. 이노베이터 놈들을 쓰러뜨릴 거야. 카타론도 셀레스티얼 비잉도 아닌, 나 자신의 의지로 녀석들과 맞서 싸우겠어. ……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일별하고, 라일은 허리의 홀스터에서 권총을 단숨에 뽑아 멀어져가는 푸른 파일럿 수트의 건담 마이스터의 머리를 겨냥했다.
(원한을 풀게 해줘!)
일찍이 없었던 신중함으로 가늠구멍과 가늠쇠, 그리고 그 너머의 흑발을 노려보았다.
요 며칠간, 쉼없이 생각하고, 줄곧 스스로를 납득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분노를 다스리지는 못했다.
총을 쏜 후에, 무슨 소란이 벌어질지는 아예 생각을 접었다.
……이봐, 세츠나, 이미 눈치챘지?
라일은 앞서 가는 건담 마이스터에게 마음 속으로 외쳤다.
권총을 뽑아 조준하는 소리를 당연 들었을 터였다.
더구나 이토록 노골적으로 살기를 뿜고 있다.
무수한 수라장을 헤쳐온 건담 마이스터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움직여, 세츠나.
움직여서 사선(射線)을 피하든, 돌아서서 응전하든 뭔가 하란 말이다.
그러면, 나도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
아니면 설마, 맞아도 좋다는 거냐, 너?
이대로라면 정말로 쏴 버린다.
그래도 좋아?
이봐.
쏜다니까!!!
방아쇠에 걸린 라일의 손가락에 서서히 힘이 들어간다.
이때 라일은 세츠나의 뒷모습만을 응시하고 있었으므로, 흑발의 청년이 각오를 굳히고 눈을 가늘게 좁힌 것은 알지 못했다.
그는 모른다. 5년 전, 푸른 건담의 마이스터가 KPSA 출신 소년병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그의 형 닐 디란디 또한 세츠나에게 총구를 들이댔음을.
그 때문이었을까. 두연히 라일의 머릿속을 두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간 것은.
한 명은, 아뉴 리터너.
또 한 명은, 닐 디란디.
아뉴는 서글픈 듯, 혹은 곤란한 듯 애매하게 웃고, 닐은 한없이 씁쓸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만일 목소리도 들렸더라면 형은, 「피는 못 속이나 보다?」라고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틈엔가, 라일의 팔이 움직였다.
방아쇠를 당긴 것이 아니다.
손이 가늘게 떨려 사선이 흐트러졌다.
라일은 반대쪽 손으로 떨림을 억누르며 총을 떨구고, 벽에 등을 기댔다.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했지만, 반대로 어렴풋하게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세츠나는 이미 통로 안쪽으로 사라졌고, 새삼스럽게 쫓아갈 마음은 들지도 않았다.
후두부를 벽에 붙이고, 허공을 올려다보는 라일의 얼굴을 자조의 그림자가 훑고 지나갔다.
……쏘지 못했다.
……이번에도, 쏘지 못했다.
그게 옳은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지금의 그로서는, 역시 판단를 내릴 수 없었다.
그는 단지, 발작적으로 등을 구부리고, 악다문 잇새 사이로 신음처럼 내뱉었을 따름이었다.
아뉴…….
「……형……」
라일의 손은.
여전히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본 에피소드의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1. 흘끗 보기만 하고도 라일이 피부의 윤기가 살짝 죽었다는 것까지 한 눈에 알아보시는 세느님 (평소에 관찰하고 계셨수!?)
2. 스물 아홉 처먹은 아일랜드 남정네의 <쏘, 쏠 거얌? ;ㅁ;> (쏠 거야 이 자식아!!! 조차도 아님)
3. 양쪽 다.

실은 <유독 그 부분만> 세츠나 시점 3인칭이라는 것도 충분히 웃겨 디질 일....크험험험험험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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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더블오 세컨드 시즌 노벨라이즈 4권 아뉴 리턴, 발췌 번역 Part 4

Banishing from Heaven | 2010/01/02 01:14

Under the Violet Moon을 찾아주시는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미 2일이 된 것도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 (뭐 임마!?)

빅토리안조에서 길을 잃으신 L모 님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새해 벽두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건 말건 우선 한 개의 번역부터 올리고 보는 S. 예 그렇습니다. 2010년 한 해도 여전히 하찮은 빠질을 할 것입니다. 진정한 오덕은 세파 따위에 지지 않습니다. 내용이 죽도록 쪽팔려서 번역하다 대략 열 번쯤 지레 죽는 줄 알았지만 아무튼 지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OTL
지난 번의 Part 3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4권 269page~275page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에 감싸인 세계에서, 라일은 아뉴를 껴안고 있었다.
마치 그녀를 제 손 안에 붙잡아 두려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소중한 여성을 끌어안고 있었다.
힘이 너무 들어갔는지, 아뉴가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조그맣게 몸을 떨었다.
라일은 그녀의 연보랏빛 머리칼에 손을 얹고, 감촉을 느끼려는 듯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품안에 그녀가 있다.
감촉이 느껴진다.
온기가 가까웠다.
익숙한 향기가 풍겼다.
피부에 닿은 손끝으로 심장의 고동마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어째선지 지금은 그것이 너무나 아팠다.
「……라일……」
속삭임에 가까운 아뉴의 목소리가 들려와, 라일은 신중하게 팔의 힘을 천천히 빼고,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시선과 시선이 맞닿고, 소중한 사람이 작게 미소지었다.
「……난, 이노베이터여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어째서……?」
「이노베이터가 아니었으면, 당신을 만나지 못했어……당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세상 어느 한 모퉁이에서 스쳐 지나쳤겠지……」
「그걸로, 됐잖아」
라일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한 번은 거의 삼켰던 말을 내뱉었다.
「사, 살아만 있다면」
고개를 숙여버린 라일의 얼굴을, 아뉴가 상냥하게 들어올렸다.
붉은 눈으로 라일의 녹색을 띤 눈동자를 마주보며, 미처 쓴웃음이 되지 못한 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나긋나긋한 손가락이, 라일의 입술에 닿았다.
「당신이 없으면, 살 보람도 없어」
「……아뉴……」
그녀의 손끝이 입술을 지나 뺨을 스치고, 턱선을 따라, 눈썹을 더듬고, 짙은 갈색의 머리칼을 쓸어올려, 드러난 라일의 얼굴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아뉴의 손이 머무른 이마 언저리의 조그마한 흉터는, 어린 시절, 공원의 나무에서 떨어졌을 때의 상처였다. 아는 것은 프톨레마이오스 2의 크루 중에서도 아뉴뿐이었다.
그녀는 미소짓고, 그러나 곧 울어버릴 듯한 얼굴이 되어, 서글프게 고개를 숙이고, 마침내 입술을 떨면서 머리를 들어, 다시금 웃어보였다.
「……라일, 우리들……」
아뉴가 안타깝게 속삭였다.
「……서로를 이해했었지……?」
라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심할 여지도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물론이야……」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안심한 듯 환하게 웃었다.
바람 한 점 느낄 수 없음에도 두 사람의 머리칼이 살포시 흔들리는 가운데, 난무하는 빛의 입자 속에서 그녀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선연하게 빛났다.
라일이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을 수 없을, 소중한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
「……다행이다……」
두연히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고,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아 간다.
지탱해 주려 팔에 힘을 주었지만, 아뉴의 몸은 단지 품안에서 빠져나갈 따름이었다.
기다려!
라일은 필사적으로 아뉴를 껴안으려 했으나, 팔은 다만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기다려!
라일은 소리없이 외쳤다.
기다려, 아뉴!
널 만나기 전까지, 나는 계속 공허하고.
외톨이고.
텅 비어 있었어!
무엇에도 애착을 품지 못하고, 무엇에도 집착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동생이 죽었다고 들었을 때도.
형이 죽었다고 전해들었을 때도.
슬프기는 했으되,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스스로를 한없이 차가운 인간으로 여겼다.
당연하게도, 가족에게조차 이 지경이니, 타인에게는 오죽하겠나 싶었더랬다.
나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지독한 결함을 안은 인간에 불과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어쩌면, 그런 자신을 견딜 수 없어서, 어떻게든 타파하고 싶어서, 미약하나마 충족감을 느끼고자, 카타론에 참가했는지도 모른다.
지구연방정부의 강압적인 정책에 의분을 느낀 것도, 반정부세력의 사상에 경도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되돌이켜보면 볼수록 전부가 얄팍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퉁기기도만 해도 간단히 부서져버릴 듯이 얄팍했었다.
셀레스티얼 비잉에 들어온 이후로도,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힘겨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줄곧 마음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럴 때, 너를 만났지.
「록온이라고 불리는 거, 사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죠?」
어째서일까. 어깨가 한층 가벼워졌다.
비명도 멎었다.
난생 처음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네게는 내가 얼마나 약한지 숨김없이 보일 수 있었어.
나는, 처음으로.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세계가 일변한마냥, 살아서,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고 있음을, 실감했어.
그걸 네가, 내게 주었지, 아뉴.
그러니까.
그러니까.
두고 가지 마.
날 두고 가지 마.
널 잃으면, 나는 삶의 보람을 잃고 만다.
살아 있는 의미마저 잃어버려.
그러니까.
제발.
아뉴.
「가지 마────!!!」
문득.
가슴팍을 떠밀린 듯한 느낌에, 라일은 시선을 떨구었다.
케루딤의 콕핏 안이고, 아뉴의 기체가 케루딤을 밀어냈음을 깨달았을 때, 새하얀 세계는 사라졌다.
황급히 정면에 시선을 향했다.
모니터에 비치는 그녀의 기체는, 칼끝이 아닌, 손을 이쪽에 뻗고 있었다.
최후의 힘을 쥐어짜, 케루딤이 폭발이 말려들지 않도록 밀쳐낸 것이다.
라일은 즉각 아뉴를 구하고자 기체를 반전시키려 했다. 그 순간, 광점이 일거에 부풀어올라 그의 시야를 태웠다.
눈앞에 붉은빛이 펼쳐진다.
아뉴의 기체가, 폭발했다.
그녀가 타고 있던 기체가, 무수한 파편으로 부서져간다.
그걸 보며.
더는 닿지 않는 줄 알면서도.
그는 팔을 뻗었다.
「아뉴────────!!!!!」
그 손도.
비통한 절규도.
모두.
허공으로 사라지고.
그 뒤에는.
우주가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즉...

...스물 아홉이나 쳐먹도록 자신과 인간관계에 대한 씻을 수 없는 불신감을 한가득 그러안고 살다가 서른 줄 다 되어 전장에서 흔들다리 효과 덕 좀 봐서 연애 한 번 해보고야 겨우 신뢰가 뭔지 알았다는 거냐 라일 디란디...? ;;;

아 놔 이놈아 대체 흑역사를 얼마나 까발려야 속이 시원하겠....!!!! orz orz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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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더블오 세컨드 시즌 노벨라이즈 4권 아뉴 리턴, 발췌 번역 Part 3

Banishing from Heaven | 2009/12/25 23:24

이 게으른 블로그를 그래도 버리지 않고 찾아와주시는 여러분께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다 지나가기 전에 겨우 시간에 댔다. 리린 님과 지벨 님의 열렬한 리퀘스트에 응하여 항례의 발췌번역 나갑니다. 지난 1년간 열심히 후달리면서 더블오 빠질을 하신 착한 어린이 여러분(...)께 드리는 나름 선물이라능. 20화의 세츠아뉴라일 시퀀스, 일명 '나는 차가운 도시건담 하지만 내연녀에게 썰리기 직전인 내 마눌의 위기는 직접 구하지'(뭐 임마!?)의 장면을 즐감하시길.
전투씬 묘사의 박력? 나한테 그런 걸 기대하시냐능.... orz


4권 257page~269page

아뉴 리터너는 생각한다.
어째서, 이렇게 되고 말았는지.
어째서, 이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운명이라는 말을 쓴다면, 이것이 소위 일컫는 「운명의 장난」일까.
혹은 운명을 인위적으로 조작당했기 때문인가.
그녀는, 이노베이터로 각성했을 때, 스스로의 존재이유와 사명을 이해했다.
이오리아 계획을 추진하는 리본즈 알마크가 이끄는 이노베이터의 일원으로 만들어져, 셀레스티얼 비잉에 잠입해, 신용을 얻고, 만일의 경우에는 이노베이터 측에 유리한 행동을 취한다.
그것은 이해했다.
자신이 만들어진 이유도 알았다.
그러나, 그만으로는 도저히 납득하지 못할 부분이 그녀의 내면에 오롯이 남아 있었다.
셀레스티얼 비잉에는, 왕류밍의 소개를 통해 들어갔다.
태어났을 때, 뇌세포에 퍼부어진 정보에는 우주공학, 모빌수트 공학, 의료관련, 그 외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잡다한 지식이 덧붙여진 대신, 이노베이터로서의 기억은 봉인되었다.
덕분에 스스로도 정체를 의심하는 일 없이 조직에 녹아들어가, 신용과 신뢰를 얻고, 동료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감사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셀레스티얼 비잉에서 생활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잡담을 하고 웃는 얼굴로 인사를 나눌 친구도 늘어났다.
그럼에도──그녀는, 공허했다.
이노베이터로서의 기억을 잃고, 과거를 무엇 하나 가지지 못한 까닭이었다.
셀레스티얼 비잉에 참가한 자의 대부분은 크고 작은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다.
설령 동료라 하더라도 이것저것 들추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정착해 있고, 애매한 기억조차 없는 아뉴는 그 덕을 많이 보았다.
허나, 담소를 나눌 때, 가벼운 인사를 교환할 때마다, 그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항간 엿보이는 동료들의 과거에 비해, 자신의 그것이 너무나도 허약하고, 얇고, 현실성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괴로워했다.
언제나 동료들과의 사이에 투명한 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럴 때, 프톨레마이오스 2에 승선하지 않겠느냐는 타진을 받았고, 왕류밍의 권유도 있었으므로, 그녀는 기꺼이 수락했다.
이노베이터로서의 기억이 없는 그녀는, 여느 조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셀레스티얼 비잉의 최전선부대인 건담을 옹립한 다목적공격모함을 동경하였을 뿐더러, 나날이 확고해져가는 투명한 벽으로 인해 다소간의 답답함도 느끼던 터였다.
마침내 프톨레마이오스 2에 올랐을 때, 아뉴는 내심 당황했다.
헐렁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세간에서 반정부세력의 기수로까지 낙인찍힌 셀레스티얼 비잉──그 최전선부대의 함내는, 기강이 엄격하고, 크루들은 하나같이 상시 표정을 굳히고 있으리라 막연하게 상상했었더랬다.
정비사인 이안 바스티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못을 박았었지만.
5년 전의 격전을 함께 헤쳐나온 유대감도 한 몫 하였는지, 함내는 어딘지 모르게 허물없는 분위기였다.
더구나, 놀랍게도 셀레스티얼 비잉의 구성원이 아닌 이를 두 명이나 보호하고 있었다.
기밀 누설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면, 보호는 고사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사살도 주저치 않아야 할 터였다.
특히 사지 크로스로드는 당초에는 조직에 대한 반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아뉴가 보기에도 불온분자가 틀림없어 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의 태도도 누그러진 듯했다.
어쩌면 함내의 분위기에 휩쓸려 갔는지도 몰랐다. 아뉴 역시, 사지와 마찬가지로 허물없는 분위기에 감화되었다.
승선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 그녀는 인간미가 넘치는 크루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있었다.
라일 디란디.
그에게서 자신조차도 깨닫지 못한 결핍된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던 건 그녀 자신 과거가 결핍된 존재였기 때문이었을까.
라일이 제 가족에 대해 차마 말로 표현 못할, 울적하고 비틀린 심정을 품고 있음은, 후에야 알았다.
때문에 그에게 「록온이라 불리는 거, 사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죠?」라고 물어본 것은, 그저 단순한 변덕심 내지는 흥미본위였을 뿐이라 믿고 있었다.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뉴가 그의 결핍된 부분을 찾아냈듯이, 라일도 그녀의 결핍된 부분을 알아보았다.
어쩌다 단 둘만의 자리를 만들었던 어느 날, 라일은 시선을 침착치 못하게 굴리면서 한참 주저한 끝에, 머쓱히 말했다.
「알아버렸으니까 하는 말인데……스스로한테 자신감 좀 가지지 그래요? 뭐, 정말 손이 텅 비어 있는 것도 아니고, 없으면 없는대로 만들어가면 되고. 당신은 당신이잖아요. 딴 사람 눈치를 보던가, 괜히 발 빼고 한 발짝 물러나 있을 필욘 없다구요. 과거가 어쨌건, 당신은 아뉴 리터너고, 그걸로 충분하잖아요」
이어서, 라일은 쑥스러움을 감추려는지 위악적인 미소를 짓고 덧붙였다.
「만약 모자라는 게 있으면, 내가 개인적으로 메워주지 못할 일도 없고?」
그때는 빈말을 웃고 넘겼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일어난 잔물결을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사람.
내가 나 자신으로 있음을 긍정해 주는 사람.
그것이, 그녀는 무척이나 기뻤다.
라일의 말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그녀의 메마른 마음의 틈새를 채워주었고, 그리고, 두 번 다시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이후는 자연스런 결과라 해도 좋으리라.
두 사람의 관계를, 서로의 상처를 핥아줄 뿐인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야유하는 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리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과거와 대면할 힘을 주고, 그가 인간으로써 모자라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부분에 빛을 안겨주고자 끌어안았고, 그는 그녀가 애매한 과거에 사로잡혀 고뇌하는 대신 미래를 볼 수 있도록 끌어안았더랬다.
그 라일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다.
이노베이터로 각성하여 셀레스티얼 비잉을 배신한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있다.
『아뉴……』
뜯겨나간 콕핏 앞에서, 케루딤이 그녀를 맞아들이려는 마냥 손바닥을 벌렸다.
『돌아와, 아뉴……』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운 울림으로 그녀를 감쌌다.
아뉴는, 이노베이터로 각성했을 때, 이전의 기억이 소거되지 않음을 꺼림칙해했다.
크루들에게 죄책감을 품고 만 것에 분개하기마저 했었다.
지금까지의 자신은 한낱 거짓이었던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광채가 넘쳐흘렀던 시간 전부가 허구에 지나지 않았던가. 본래 있어야 할 곳에 돌아왔을 터였건만──여전히 가슴에 뚫린 크나큰 공허를 느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감사한다.
기억이 고스란히 남았던 까닭에, 총을 쏘긴 했으되, 급소를 빗겨가, 랏세를 죽이지 않을 수 있었고, 다른 이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에 대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라일……나……나는……」
그래도 되는 것일까.
조직을 배신했는데…….
집이라 해도 좋을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도.
그의 품 속에 뛰어들어도.
괜찮을까…….
──괜찮아.
라일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환청이었을 뿐이지만, 사고보다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조종간 앞에 있는 콘솔 패널을 짚고, 시트에서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그녀는 콕핏을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때.
아뉴의 헬멧 바이저에, 금색으로 빛나는 두 줄기의 빛이 비쳤다.
그녀의 입술이, 주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나지막하게.
「……어리석은 인간……」

그 말의 의미를, 라일은 한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분명 시트를 벗어나, 케루딤이 내민 손으로 옮겨 타려 했었다.
「아뉴……?」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직후였다.
코발트 그린의 모빌수트가 격하게 실체검을 휘둘러올려, 케루딤을 밀쳐내고, 주위에 산포한 아홉 개의 GN 실드비트를 일격에 갈랐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허리의 스커트에서 3기의 GN 팽이 발사되었다. 빔 사벨을 뽑아 종횡무진으로 날뛰며, 무기가 없는 케루딤을 미친듯이 찢어발겼다.
사방에 쏟아지는 충격에 휩쓸리며 라일은 외쳤다.
「아뉴!!?」
그러나, 돌아온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냉담했다.
『……이노베이터는 인류를 이끄는 자……』
격하게 흔들리는 모니터의 화면이, 양눈의 홍채를 금빛으로 빛내며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입술만을 움직이는 그녀를 비추었다.
『……상위종이자, 절대자……인간과 대등하게 취급받다니 아주 불쾌하군……』
마치 무언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그녀의 입술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문득 기계적인 그녀의 표정이, 의사와는 상관없이 살며시 입끝을 들어올린 것 같았다.
『……힘의 차이를, 똑똑히 보여주지』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3기의 GN 팽이 일제히 매섭게 날뛰었다.
공간을 잘게잘게 토막낼 기세로 케루딤의 주위를 날며 그때마다 빛의 단검으로 모스그린의 기체를 상처입힌다.
「그만해! 하지 마, 아뉴!!」
부서져가는 케루딤 속에서, 라일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불렀다.
응답은 없었다.
GN 미사일을 발사하려 한 허리의 장갑은 찢겨나가고, 안면의 거의 절반은 박살났으며, 오른팔은 팔꿈치 아래가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케루딤은 아뉴의 기체와 다를 바 없는 무참한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다.
왼팔을 잃은 코발트 그린의 모빌수트가 오른손에 쥔 실체검을 재차 겨누었다.
베기 위한 자세가 아니다.
꿰뚫기 위한 자세였다.
날카로운 칼끝부터 칼을 움켜쥔 오른팔의 어깻부리까지, 일직선으로 케루딤의 콕핏을 노리고 있었다.
라일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똑바로 응시했다.
아뉴의 기체가, 실체검에 빔사벨의 빛을 두름과 동시에, 등에서 오렌지색의 GN 입자를 뿜어내며 돌진해오는 것을.
눈을 깜박일 틈새도 없었다.
몇 초 사이에, 그녀의 기체는 오른팔의 실체검을 케루딤과 라일에게 무자비하게 꽂아넣으리라.
『타아아아아아아아아앗!!!!!』
「아뉴──────!!!!」
두 사람의 외침이 겹쳤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때의 라일은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단지.
마음 한구석에서 어렴풋이 떠올렸을 뿐이다.
아뉴가 이노베이터로 각성하고도 예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잃지 않았음은, 알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도, 말투에서 알아차렸다.
그러니, 모든 게 끝나고 아뉴가 제정신을 차렸을 때.
만일, 라일을 제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녀가 슬퍼하지 않을까.
단지,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보지 못했다.
멀리서 날아오는 한 대의 모빌수트와, 모빌수트가 발사한 입자 빔을.
접근해오는 모빌수트가 너무나도 멀었고, 반파한 케루딤의 E센서의 감도가 극한까지 떨어져 있기 때문이었지만, 그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줄기의 빛이 우주공간을 질주하여, 아뉴의 기체를 꿰뚫을 때까지.
……………………에?
라일의 사고회로는, 신호를 상실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며, 시간이 멈추고, 말을 잃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지. 자문했으나, 답은 뿌옇게 정신을 뒤덮은 안개에 가로막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시각기관은 그 광경을 똑똑히 포착했지만, 뇌세포는 답을 도출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라일은 분명히 보았다.
한줄기의 입자 빔이, 기체의 콕핏 부근에 꽂히는 것을.
1초의 몇천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순간이 끝나고, 비스듬히 아랫쪽에서 달려온 입자 빔은 기체를 완전히 꿰뚫었다.
거짓말.
그렇게 믿고 싶었다.
허나, 코발트 그린의 모빌수트는 단번에 이제까지의 기세를 잃고, 정면을 겨눈 검끝은 힘없이 기울어, 관성의 법칙을 따라 떠돌 따름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라일은 케루딤의 팔을 움직여 서서히 가까워지는 그녀의 기체를 받아안았다.
콕핏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접근해오는 모빌수트가 트랜잠을 발동한 더블오라이저──트랜잠라이저임도, 그는 깨닫지 못했다.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앞의 반파한 기체를 그저 바라볼 뿐이다.
트랜잠라이저가 바로 옆을 스쳐지나가, 주변에 흩뿌려진 가속입자가 그녀를 지배하던 뇌양자파를 끊어낸 것도, 라일은 모른다.
그녀의 기체를 끌어안고,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세계로 향했다.
하얀, 공백의 세계로.

코멘트하기가 곤란할 만큼 심각하지 말입니다...
아뉴라일 묘사에 진짜 공 깨나 들였다 싶더이다. 남자 주제에. 건담 노벨라이즈 작가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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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링 이 자식이.

Banishing from Heaven | 2009/12/16 22:59

사쿠뿅과 미나미도 아니고 사지 총각과 펠트 처녀가 CB 아닌 인페르노에서 구르고 있는 판에 (미안하지만 두 성우 다 매우 사랑하지 않음) 내가 저걸 뭐하러 힘빼가며 볼까 싶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팬텀 오브 인페르노 TV판이,
어머 글쎄 진엔딩으로 가는 척 실컷 폼잡다 초 배드엔딩으로 시청자들 뒤통수를 쾅 쳤다네요!? (캐폭소)

그러니까 즉, 원래 진엔딩은 쯔바이가 아인/엘렌을 - 아마도 그녀의 고향인 - 몽골의 대초원으로 데려가 둘이서 광대한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게임 팬들 말에 의하면 감동의 쓰나미라는) 엔딩인데, 이놈의 쿠로다가 몽골까지 싸바싸바 데려가놓곤 갑툭튀한 암살자가 쯔바이를 뒤에서 쏴버렸다네...........!!!?
그래놓고 쿠로다 이 새끼는 입에 거품 문 원작 팬들과 심기 조낸 불편하신 원작자에게 졸랭 뻔뻔하게 '왜들 그러셔 배드엔딩이 젤 좋았다능?' 이러고 있다네요.......!?

黒田てめえええええええマジ最高おおおおおおおおおおおおお

쿠로다... 쿠로링......쿠로디아!!! 이 망할 놈의 반골시키가............!!!!!! (데굴데굴데굴데굴데굴데굴데굴데굴)


아 근데, 입에 피거품 물고 캐분노하는 팬들에겐 안된 일이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업보대로 치른 게 맞다.
걔들 암살자였잖아. 자의건 자의가 아니었건 손에 그만큼 피 더덕더덕 묻히고 어딜 가겠다는 건가. 그래 해피엔딩이 어지간히 꼬왔던 모양이구먼 쿠로다. 어 이해해요 사실은 나도 살짝 밸꼬였(후략)
무엇보다 나스 키노코와 공동 작업씩이나 했던 우로부치 겐에게 베풀 자비 같은 건 없(기를 쓰고 후략)

헌데 왜 카테고리는 Banishing from Heaven이냐 하면, 아 덕분에 더블오 극장판의 미래가 항간 보여버렸기 때문이다. 암살자로 살아온 쯔바이가 결국 또다른 암살자의 손에 최후를 맞았듯이 '세츠나는 또다른 소년병에게, 라일은 케루딤으로 쏴죽인 병사 A의 동료 B에게 쳐발려도'(by 자타공인 취향 나쁘신 L모 님) 할 말이 없어라....... 먼 산.
랄까 졸랭 쌓인 거 많으신 모양인데 그냥 확 사고 쳐버리지 그래요 다스 쿠로링? 발 밑에 엎디어서 평생 핥아줄게. 가끔 스패너를 휘두르긴 하겠지만 그건 당신의 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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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더블오 세컨드 시즌 노벨라이즈 4권 아뉴 리턴, 발췌 번역 Part 2

Banishing from Heaven | 2009/12/13 01:29

하가렌 102화의 끔살스러움을 무마하는 한편 (여사님... 젖소 여사님.... 님이 이러시면 안된다능...) 와우의 노예(...) L님의 오닉시아 쳐잡기 + 주사위 승리를 기념하고자 실로 오랜만에 더블오 2기 노벨라이즈 4권을 펼쳐들었다. 어딜 보아도 미칠듯이 황망한 관계로 그냥 배째고 20화 A파트에 해당하는 문제의 그 부분을 찍었다. 일격필살의 위력은 가히 섹시 코만도 엘리제의 우울. 자 크게 심호흡하고 숨넘어가지 않을 채비들이나 하시라능.


4권 193page~198page

메인 시스템이 가동을 하건 하지 않건 프톨레마이오스 2의 함내는 무중력 상태를 유지한다.
시스템 다운으로 이동하는 데 지장을 받는다면, 벽에 설치된 이동용 사이드 바를 쓸 수 없다는 것 정도이다.
한 발 앞서 달려간 세츠나가 필리스 바로 옆에 내려서자, 라일은 그대로 세츠나를 지나쳐 필리스의 사선(射線)을 가로막듯이 대치한 두 여자 사이에 끼여들었다. 두 사람의 딱 중간 지점쯤에 멈춰선다.
식당에 갇히기는 했지만, 시스템 다운으로 도어록 역시 걸리지 않았으므로 마이스터들은 완력으로 문을 비틀어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다소 걸리긴 했으되 타이밍은 그다지 어긋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알렐루야와 티에리아, 세츠나와 라일로 갈라져서 아뉴를 찾게 되었을 때, 세츠나가 돌연 이쪽이라면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라일을 인도했다.
어째서 세츠나가 아뉴의 위치를 이토록 정확히 잡아냈는지는 불가사의할 따름이었으나, 일단 라일은, 그 의문을 잠시 잊기로 했다.
눈물이 글썽글썽한 밀레이나가 「세이에이 씨, 스트라토스 씨!」를 외치면서 얼굴을 환히 밝혔다.
밀레이나가 안심하도록 한 번 웃어보여주고, 그는 적의 동료로서 각성하고 만 연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쯤 해둬, 아뉴……」
「……라일……」
아뉴는 필리스에게 향했던 총구를 다시 밀레이나에게 들이댔다.
라일은 일순 목이 콱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그만 머리가 텅 비고 만 것이다.
동요를 감추면서 짧은 시간 안에 사고회로를 최대한으로 돌려, 라일은 곤란한 듯이 웃으면서 설득을 시도했다.
「날 두고 가버릴 거야?」
그 말이 얼마나 효력이 발휘했는지는 말을 꺼낸 본인조차 상상의 영역에 맡겨야 했지만, 적어도 그녀의 마음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아뉴의 시선이 미미하게 떨렸다.
곧 그녀는 라일에게 위악적인, 그러나 가냘픈 미소를 보이며 제안했다.
「그럼……나와 함께 오겠어? 세계의 변혁을 보게 될 거야」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라일은 내심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있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나쁘지 않았다.
한순간에 결단을 내리고, 라일은 오케이, 라고 경쾌하게 답변했다.
「그 제안, 받아들이지」
「에엣!?」
밀레이나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소녀의 경악을 무시하고, 라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덤으로 케루딤도 붙여줄게」
저격수가, 세츠나를 돌아보았다.
「뭐 그렇게 됐어, 세츠나. 이제까지 신세 많이 졌다」
푸른 파일럿 수트의 건담 마이스터는 눈썹의 각도를 미묘하게 틀고 라일을 주시했다.
라일은 그 시선을 똑바로 받아쳤다.
아이컨택트로 어디까지 통할지는 모른다.
실상, 이때의 라일은 완전한 결단은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의 기대에 세츠나가 부응해 준다면, 셀레스티얼 비잉에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만 만약, 반대라면…….

위로 살짝 들어올린 라일의 입가가 서서히 일자를 그리기 시작해.
마침내는 밑을 향했을 때.
「……그런가……」
세츠나가 말했다.
「알았다!」
세츠나는 번개같은 동작으로 필리스의 총을 빼앗아 라일에게 발포했다.
어깨에 예리한 통증이 내달렸다. 무중력 상태도 거들어, 라일의 몸은 허공에서 휙 뒤집혔다.
밀레이나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퍼지고, 그 뒤에서 「라일!?」을 부르짖는 아뉴의 외침도 고막을 때렸다.
라일은 입술 끝을 치켜올렸다.
그렇구나. 아직도 걱정해 주는 거야?
기쁜 일인걸.
하지만……!
시야의 한끝에 밀레이나가 들어왔다. 라일은 전력을 다해 벽을 차면서 아뉴의 팔에서 밀레이나를 강탈했다.
등뒤에서 총을 겨누는 소리와 바닥을 박차는 소리가 동시에 들리고, 하얀 파일럿 수트의 그림자가 옆을 가로질렀다. 라일은 아뉴가 무사히 도주했음을 알았다.
곧바로 그녀를 쫓아가 팔을 움켜쥐려고 했지만, 가슴팍에 매달려 서럽게 흐느끼는 밀레이나를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으므로, 씁쓸하게 단념해야만 했다.
「무사한가?」
아뉴의 기척이 멀어지고, 다가온 세츠나가 질문했다.
라일은 세츠나에게 시선을 주면서 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진짜로 맞추면 어떡하냐? 하여튼」
경화 플라스틱제의 어깨받침에는 시커먼 탄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총알이 스쳤을 뿐이었지만, 충격으로 근육도 조금 저릿저릿했다.
그러나, 이로써 라일의 셀레스티얼 비잉 잔류는 결정된 모양이었다.

한 줄 요약 : 형님아 세츠나 님하 결정해주삼

모처럼 스물 아홉이나 줏어먹었으면 그 정도 결정은 니가 해라 색히야........... OTL
안 그래도 보통 남 말 좋아하는 사내놈들이 즐겨 작성하기 마련인(편견이다 임마) 엔하위키의 세츠나 F. 세이에이 항목에 '흐느끼는 라일을 슬픈 눈으로 지켜보며 있는 것을 보고 팬들 사이에서 나이가 훨씬 어린데도 불구하고 2대 록온에 대해서는 보호자 격인 위치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이따구 구절이 떡하니 들어 있는 천인공노할 사태에 삼공에서 피를 뿜으며 기함하였거늘 준 오피셜에서 이렇게 대놓고 무우려 여덟 살이나 연하인 애를 형 Part 2 내지는 마음의 보호자로 점찍고 있으면 보는 놈은 어떡하라는 건가. 웃다 디지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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